제각기 손을 흔들며 떠나고 있습니다.
한 대의 버스가 줄줄이 선 사람들을 싣고 어디론가 총총히 가버리듯이...
우리 집에서도 벌써 큰 아이가 대충 짐을 꾸려 타지로 가고 휑뎅그렁한 빈 방의 남은 옷가지와 몇 권의 책만이 한 사람의 부재를 알린 채 언제 다시 올까 주인을 기다리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안 온다는 것쯤은 압니다. 졸업식장의 아이들도 그 자리에 그대로 지금처럼 다시 모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헤어지면 영원히 다시는 못 볼 친구들이 그토록 많으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늘 밝으시거나 혹은 꾸지람으로 눈물을 쏙 나오게 만드시던 선생님들! 내 옆자리 정님이, 가까웠거나 멀었거나와 크게 상관없이 이렇게 못 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내년에 봄이 또다시 온다고요. 아니에요. 아니지요. 내년에 오는 봄은 저기 저 나무의 이파리부터 가지마다의 개수부터 나무의 색깔까지가 똑같지 않으니 그렇게 똑같은 봄이 오는 건 아니란 말입니다. 가물거나 홍수에 태풍에 아니면 심지어 사람들의 장난으로부터라도 그만 변을 당해서 잘 보면 작년과 다르니까요. 여하튼 간에 마음에 깊은 애증을 갖지 않는 한 연연하지 않으렵니다. 그들은 그 나름대로 언제나 평화로워 보일 테니 말이지요. 그저 별 생각 없이 산과 들을 보며 ‘봄이 오나 보다’하면 봄이 오고야 마니까요.
이제 곧 봄이 오리라는 것을 알게 된 날이 왔습니다. 봄이 오려면 어쩐지 이상합니다. 여느 때처럼 내리던 겨울비도 추적추적 꼭 봄의 느낌과 함께 오니까요. 콕 찍어 어디에 봄 빗소리라고 쓰여 있기라도 하나요.
그리고 갑자기 졸업식입니다. 학교 앞에서 수없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무척 많은 학생들을 봅니다. 저렇게 많은 아이들 중 삼분의 일은 졸업생들이지요. 해마다 이렇게 많이 졸업하는 예쁜 여자 아이들, 듬직한 남학생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이 세상 어디론가 흩어져 저만의 길을 가겠지요. 졸업하고 집 떠나 공부하고 직장 다니다가 결혼하고 자녀를 두고...이렇게 살아들 가니까요. 자연의 섭리가 그런가 봐요.
멋모르고 순진하기만 했었는데 삽시간에 나이 들고 초라해졌지만 마음만은 애초에 가졌던 그대로임을 압니다. 살아가려다 보니 독해지고 애들 키우다 보니 강해지며 모기 물까 모기 잡고 벌레 쏘일까 벌레도 잡고 밥 먹이자고 생선에 고기에 .....아! 부모 노릇, 아내 노릇, 자식 노릇, 형 노릇 그런 저런 시늉 내기에 내키지 않은 일도 참 많이 했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연배에 걸맞도록 겉치레마저도 시늉내기에 익숙해져 그냥 나이든 사람으로 보일뿐 이미 예쁘지 않습니다. 투박하고 기교 없는 어투, 마냥 편안하면서도 쉬이 더렵혀지지 않기까지 하는 늘 입는 옷, 하녀와 다름없는 차림새, 꾸밈없이 대충 제멋대로 된 헤어스타일은 내가 보아도 낯설어지네요. 어쩌다가 가족 모두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왜 그렇게 꾸물거리게 되는지, 맨 나중에 신발을 신는 나를 가족 누군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혹시 기대할까 무서워요. 결국 이것저것 입어보다가 저번과도 그 이전과도 똑같은 옷을 입고 말았는데 그러면서 이렇게 시간을 잡아먹었냐고 뭐랄까 봐. 차안에서 슬쩍 백미러로 보니 글쎄 창피하지만 눈썹이 짝짝이로 그려졌어요. 움직이는 차안에서 그걸 고치려니 ....사실 더 한 이야기도 많지만요. 가정을 꾸리고 둥지안의 것들을 기르자면 시간도 돈도 아껴야 하니 어쩌면 괜찮아, 괜찮아 하며 스스로 최면을 거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무료한 마음에 이리저리 TV채널을 돌리다가 자연 다큐를 보았던 생각이 납니다. 쉼 없이 먹이를 물어 나르며 새끼를 기르는 어미 새가 있었어요. 어미 새 자신은 먹는지 안 먹는지도 모르고 늘 새끼의 배를 채우기에 혼신을 다하는데 그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금세 새끼는 쑥쑥 자라납니다. '많이도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파닥 파닥 미숙한 날갯짓 몇 번을 끝으로 쌩~하고 날아가 버립니다. 그나마 제 둥지를 빙 한바퀴라도 돌고 가는 녀석이 신기할 정도니까요. 하늘 속으로 숲속으로 너무도 멀리... 아무리 날짐승이지만 매정하기도 하다. 저 어미 새는 슬프겠구나! 그래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새보다는 행복합니다. 가끔은 소식도 전하고 한번쯤은 손님처럼 찾아주기도 하니까요.
우리 큰 아이의 남은 짐을 꾸리던 날, 겉으로는 물론 울지 않지만 속으로는 울었습니다. 만일 눈물을 보인다면 어미 새보다 못한 엄마 사람이 되니까요.
때가 되어 가야 할 우리 아이 전정에 엄마의 눈물이 짐이 되는 건 싫습니다. 혹독한 겨울이 다하면 봄이 오는 것이고 새들도 자라면 둥지를 떠나듯이 변화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고 흘러야 막히지 않고 뭐든지 제대로 되어가니까요. 다만 가만히 마음속으로 말없이 말합니다.
숱하게 했던 질책의 말들, 자그마한 칭찬을, 늘 차려주던 밥상을!!! 기억하라 아가! 모진 엄마에게 서운했던 순간도 많았겠지만 그게 못난 엄마에겐 최선이었구나! 그러나 지금 엄마는 그 순간을 후회한다. 칭찬에 인색하고 질책에 후했으며 가난하던 밥상을 용서하기를. 하지만 번민할 때나 힘들 때나 아플 때도 인생의 해답이 질책과 칭찬과 밥상의 기억에 있음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사랑한다, 사랑해... 아가야! 봄아! 꽃들아! 떠나가는 모든 사람들아! 새로이 기지개 켜는 이 세상 모든 만물들아! 그리고 피어나려는 아름다운 꿈들아! 머잖아 곧 봄이 오겠지! 한 번 가버리는 모든 것들은 그대로는 영영 다시 오지 않으니 한번뿐인 오늘을 오늘답게 살 수 있도록 꿈꾸어 보기를 빈다.
모쪼록 세상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새의 비상처럼 더 높이 솟아올라 날아 보아라! 때로는 잔잔히 흐르는 물처럼 신중하여라! 변화하는 세파에 적응해가며 진실로 원하는 너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기원한다. 안~녕!
오늘은 문득 깊은 겨울잠으로부터 깨어나 봄에게 한 장의 편지를 전해봅니다.
- 편집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