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추모하는 마음으로.. 하나 둘 곱게 물들던 단풍은 그 끝을 모른 채 깊은 가을로 치닫더니 이젠 더 이상 고울 수만은 없는 잿빛 가을이 되었다. 꽃은 피어야 하고 과일나무에는 열매가 열려야 하듯이 청춘은 젊음으로 맘껏 달리고 뛸 수 있어야하기에 우리는 떠나간 너희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고 싶구나. 여전히 고운 몇몇의 단풍잎 사이로 보이는 맑고 푸른 하늘은 올여름 너와 함께 하던 시간을 생각게 한다. 밝게 웃던 너의 모습과 집 밥을 맛나게 먹어주던 예쁜 입과 그리고 나를 불러주던 목소리까지..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끈 채 문간을 나서던 너희를 그때 더욱 힘껏 안았어야 했었나.. 모든 이별의 마지막 순간은 그길로 다시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끝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왜 미리 헤아리지 못하는 것일까! 쉴 새 없이 지는 나뭇잎 공원의 인파는 다 어디로 갔는지 도토리 나무 위를 오르내리는 청설모만 바쁘다. 그 아이들은 다 어디로 떠나갔는가. 낙엽 밟는 소리가 참 좋았던 때도 있었으나 오늘은 이리저리 피한다고 해도 낙엽은 어느새 발밑에 있다. ‘네가 이 자리에 있고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데.. 이 어려운 세상에 우리가 너희를 낳아 길러
나란 사람은 한마디로 세상살이가 수월하지 못한 부류에 속한다. 지나치게 스스로를 비하하고 싶진 않지만 사소한 일에도 끙끙대는 못난 성격의 소유자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조그만 일이 있어도 남보다 크게 생각하고 결국 밤에 그 일들을 침상 안으로 끌고 들어와 생각에 빠지다보니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숙면하지 못하니 마음도 무겁고 우울하여 건강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건강칼럼을 보았는데 햇빛을 쬐어주면 비타민D가 합성되어 숙면에 도움을 줌은 물론 마음까지도 행복 해진다나 어쩐다나. 물론 이 사실을 전부터 모르진 않았으나 자연스레 상황이 상황인 만큼 마음에 와 닿았다. 그 후 몇 번 그걸 실천해보았다. 우선 햇볕에 그을리면 안 되는 얼굴엔 선크림을 과하게 바르고 팔다리는 건강을 위해 좀 희생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시간대는 낮 10시~2시 사이가 좋다 하여 오전 10경에 주로 바지의 다리만큼은 걷어 올리고 나다녔다. 그게 그렇게 이거다 할 만큼의 큰 효과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마음만은 행복해졌다. 우울함이 귀신같이 사라지고 그간 못 가져본 삶의 의욕이 생겨나 처박아 둔 화분에 쪽파를 심기까지 했다. 그 시간대에 수없이 돌아다니시
얼마나 오고 또 갔는지 모른다. 나의 길! 의식과 무의식의 모든 부분을 점령해버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얼굴에서조차 내 삶의 가는 길이 투영되어 있음을 느낀다. 긴 세월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지는 화석처럼 그렇게 어느새 나도 비밀스럽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때때로 우리는 삶의 배경이 안이했던 비교적 평화로운 얼굴을 지닌 사람들과 이와는 달리 치열하게 살아와 고생의 흔적을 고스란히 내포한 얼굴들과 마주한다. ‘참 곱게 나이 든 얼굴이다’ 혹은 ‘어렵게 지내온 분이구나’ 말없이 스치며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내 모습은 어느 쪽인가를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굳이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나 역시 세월과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하고 얼굴로 맞이하며 시간 속으로 더욱 깊이 걸어들어가고 있다. 하늘엔 별이 있고 들에는 시원한 바람이 있고 샛강에는 여유로운 물결의 파동이 있음을 하나 둘씩 젊음의 푸른 잎이 지기 시작하는 지금에서야 생각하게 된다. 여태 걸어 온 길도 문득 내 모습도 나의 삶도 반추한다. 그림을 그렸더라면!!!!!!!!!!!! 지금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여기서 살았을까, 서울서 아니면 전혀 생각지 못한
봄이 오고 어느덧 꽃으로 물들던 계절의 화려함에 익숙해질 무렵 세상은 다시 초록을 휘감고 있다. 눈과 마음마저 싱그럽고 온갖 생물이 마냥 살기 좋은 때다. 겨우내 자동차 밑에 쭈그리고 앉아 세상을 거부하듯 옴쭉 달싹 안 하던 길냥이들도 느릿느릿 등을 곧추 펴고 나다니고, 우리 집 베란다 실외기 밑 시끄러워 죽겠는 비둘기 녀석들도 뭐라고 그렇게 구구대는지 ,어쩌다가 시끄러워 베란다 창을 열어 ‘시~끄~럽~다~!' 외치면 저만치 저 키 큰 소나무에 앉아서 뭔 생각을 하는 척 하다가 금새 다시 돌아와 앉는다. 베란다에 아무것도 없다면야 소음 정도야 참아 내련만 나물 채반이 거기 있으니 좀 마음이 쓰인다. 조류 독감이니 뭐니 하는 것도 신경을 거스르고. 하지만 어쩌랴 이 모두가 자연의 섭리이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사는 세상인 것을. 이런 날에는 사람들도 삶이 바빠진다. 아니면 활기차다고 해야 하나! 철 지난 계절의 옷가지와 살림살이, 청소, 먼지 쌓인 창가, 들로 산으로 몇 번 나다니다 보면 냉장고엔 묵은김치만 자빠져 있다는 지나가면서 자기네들끼리 나누던 어느 중년 여인의 말에 공감한다. 화창한 날씨! 맥없이 가방을 매고 시내를 쏘다니고 싶은 맘을 억지로 참고(그래
초등학교 3학년 햇살이 눈부시던 어느 날이었다. 4교시 청소를 끝마치고 여느 때처럼 아이들의 무리에 섞여 막 하교하려던 무렵, 운동장 저편에서 몸집이 작달막한 남선생님의 자전거 탄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혼자가 아니라 안경을 쓴 선생님의 어깨 너머로는 머리카락이 하늘거리는, 허리쯤 내려온 여학생이 뒷자리에 함께 타고 있었다. 그 여학생의 형상이 시야에 밀착되기도 전에 보자마자 ‘예쁜 언니라서 태워 주나 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자전거가 가깝게 달려오자 그것은 완벽한 사실이 되고야 말았다. 그 때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무용을 하는 날씬하고 속눈썹이 긴 인형 같아 보이는 여학생들도 종종 본 적 있으나 오늘 본 이 언니는 뭔가 느낌부터 좀 남달랐다고 할까, ‘언니’라고 혼자서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실상 내게 언니라는 것은 아예 없다. 이름도 학년도 모르는데 ‘진상’이라는 그의 이름과 6학년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좀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때 뭇 학생의 이름을 알게 되는 방법으로는 이름표를 본 다거나 시상식 때 교단에서 호명할 경우에 듣게 되어서다. 그래저래 알게 되었지만 혹시 그 언니가 보일
제각기 손을 흔들며 떠나고 있습니다. 한 대의 버스가 줄줄이 선 사람들을 싣고 어디론가 총총히 가버리듯이... 우리 집에서도 벌써 큰 아이가 대충 짐을 꾸려 타지로 가고 휑뎅그렁한 빈 방의 남은 옷가지와 몇 권의 책만이 한 사람의 부재를 알린 채 언제 다시 올까 주인을 기다리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안 온다는 것쯤은 압니다. 졸업식장의 아이들도 그 자리에 그대로 지금처럼 다시 모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헤어지면 영원히 다시는 못 볼 친구들이 그토록 많으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늘 밝으시거나 혹은 꾸지람으로 눈물을 쏙 나오게 만드시던 선생님들! 내 옆자리 정님이, 가까웠거나 멀었거나와 크게 상관없이 이렇게 못 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내년에 봄이 또다시 온다고요. 아니에요. 아니지요. 내년에 오는 봄은 저기 저 나무의 이파리부터 가지마다의 개수부터 나무의 색깔까지가 똑같지 않으니 그렇게 똑같은 봄이 오는 건 아니란 말입니다. 가물거나 홍수에 태풍에 아니면 심지어 사람들의 장난으로부터라도 그만 변을 당해서 잘 보면 작년과 다르니까요. 여하튼 간에 마음에 깊은 애증을 갖지 않는 한 연연하지 않으렵니다. 그들은 그 나름대로 언제나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