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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기린은 햇볕을 좋아합니다.
꽃이 항상 사시사철 피어 있고 자잘한 꽃이 아기처럼 참 예뻐요.
그래서 추운 겨울이지만 실내로 들이질 않고 베란다 창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아 모셔 놓았더랬지요.
춥다보니 베란다에도 자주 나가질 않고 물도 자주 안 주었는데, 꽃기린 옆 구석 자리에 신기하게도 뾰족하게 새순이 올라오더니 점점 커지는 게 있더라고요. 이게 '참 추운데 풀이라니, 역시 잡풀은 질기구나' 라고 생각했죠.
자라던가 말던가 뽑아내지는 않았어요. 추위에 뿌리내린 그 생명력이 안타까워서리.
어느날 가만 보니 시골서 보던 들깨 나무 쌈 싸먹던 바로 그 잎인거예요. 게으른 주인 탓에 들깨는 늘 지친 어깨를 늘어뜨린 채 괴로운 듯 허우적거리고.....
'추운데 누가 물을 자주 준담!'
암튼 그러려니 했어요. 그 구석에서 뭘 먹고 자라는지 제법 줄기가 튼실해지더니 어느날 거기에 꽃이 진 봉오리와 열매가 달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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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라서 물을 주기 시작합니다. 향긋한 깻잎 냄새가 풍겨 나오죠.
들깨가 채 익지 않은 하얀 것과 익어서 갈색이 된 것들이 위 아래 층에 마주보고 매달려 있네요. 예전에 들깨는 쌈지 속에 쌓여 있는 것을 도리깨로 두드려 터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얘네들은 금방이라도 씨앗을 떨굴듯이 말입니다.
추운 겨울을 이기느라 형편없이 된 꽃기린과 열매를 키우느라 고생한 들깨,!
같은 공간에서 서로 모르는 것들끼리 꽃 피우고 열매를 맺고.....
사람들 같았으면 어땠을까요.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서 과연 자연과 살아있는 것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생각합니다.
베란다 창가에 내버려둔 채 춥다고 소홀했던 지난 겨울 (사실은 너무 추운 어느날! 창가에 바짝 둔 꽃기린이 얼어 가지고 잎이 낙옆처럼 돼 있었는데 사진찍느라 털어 냄,) 돌이켜보니 그들에게 새삼 미안해지네요.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