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관아 건물인 무주 한풍루가 보물이 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20일 전북 유형문화재인 무주 한풍루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호남 최고의 누각이라고 부르는 한풍루(寒風樓)는 전주의 한벽당(寒碧堂),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와 함께 삼한(三寒)의 하나이다. 임진왜란(1592)때 왜군에 의해 불에 탔던 것을 선조 32년 (1599)에 한풍루를 사랑한 임제가 꿈속에 나타나 한풍루 복원을 원해서 동생 현감 임환이 다시 지었고, 1783년 현감 임중원이 중수하였다. 전주의 한벽당, 남원의 광한루와 함께 호남의 3한의 하나로서 호남 제1의 누각이다.
일제 때에는 불교포교당(佛敎布敎堂)으로 쓰여왔고, 그 뒤 안국사(安國寺) 승려 이철허(李澈虛)가 불하받았으나 저당채무조(抵當債務條)로 일본인에게 넘겼으며, 일본인은 다시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에 살던 이명주(李命周)에게 팔아넘겼다.
이명주는 1936년 이 건물을 양강(陽江)가로 옮겨 지어 금호루(錦湖樓)라 불렀으나 1971년 2월 현위치로 다시 이건되었다. 원래 관아가 자리하였던 남대천(南大川)가에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무주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현판은 한석봉이 썼다고 알려져 있으며 조선 전기의 문장가 성임(成任)의 〈한풍루시 寒風樓詩〉가 전하여지고 있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임진왜란때 전소돼 다시 건립됐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을 통해 조선초기부터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당시 수많은 묵객이 글과 그림으로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전해지는 이곳은 정면 3칸, 옆면 2칸의 중층 누각 팔작지붕건물로 조선후기 관아누정의 전형적인 건축물로 전해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