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양씨부인이 살고 있었는데 설씨 총각이 결혼할 것을 요구하자 부인은 총각이 나막신을 신고 서울에 다녀올 때까지 성을 다 쌓지 못하면 허락하겠다고 했다. 부인이 마지막 성돌을 채 올리기도 전에 총각이 돌아오자 돌 나르던 치마를 뒤집어 쓰고 성벽 위에서 몸을 날려 자결하여 정절을 지켰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 온다.
백제 시대 만들어져 고려, 조선초기까지 군창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아홉 아들과 함께 쌓았다는데 양씨부인을 아내로 맞으려 했던 총각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을까, 아홉 아들을 다 어쩌려고....... 혹, 농경 사회였으니 일손을 늘리려고?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편집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