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 있어서 ‘허기(hunger)’는 참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시장 자유주의 논리 위에 있는 세상은 오히려 화려함과 풍족하다는 말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빈곤과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 관한 문제는 연일 쏟아져 나온다. 청년 실업률이 10%에 다다르고, 거의 4년째 2%에서 3%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지금,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은 경제적인 빈곤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날이 벼려진 칼날 같다. 인터넷 기사에 댓글만 봐도 현 문재인 정부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혹은 과하게 깎아내리는 양상이 펼쳐진다. 중도의 온건한 온도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유 튜브 홈페이지에서 가짜뉴스를 퍼트려 특정 사회정치적 성향을 옹호하거나 선동한다.
주 창윤의 <허기사회>는 과도한 흥분과 공분을 현대인의 정서적인 허기에서 찾고 있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에 일어난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사람들은 말 그대로의 배고픔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는다. 다만 이미 비어버린 밥그릇을 보며 끝이 없는 공허감과 보이지 않는 정신적 허기를 느낀다. 한 때 수많은 미디어는 ‘치유’, ‘힐링’의 코드로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저자 주 창윤은 이런 상황을 ‘퇴행적 위로’라고 지칭한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경제적, 사회적 현실이 따라주지 않고, 경제 성장의 주역들은 기득권이 되어 고칠 생각이 없다. 실질적 바통을 받아야 하는 현대인들은 알 수 없는 정서적 병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일차적이고 손쉬운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힐링 코드가 2012년경에 크게 유행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힐링, 치유의 콘텐츠는 예전만큼 활발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 유명 개그맨이 ‘아프면 환자지’라는 냉소적인 말로 이미 위장된 위로, 치유임을 우리 사회가 자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복잡한 이야기나 교훈을 주는 콘텐츠가 아닌, 단순한 행동 그 자체만을 중심으로 하는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번에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영상, 액체 괴물로 칭하는 반 고체형 풀을 주물러 가며 노는 영상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 사회는 소진(burn-out) 되어 버렸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는 현대인들은 끊임없는 공허의 나락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길고 긴 저성장 시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일차적인 미봉책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과거로의 직면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힘겨운 삶을 살아가지만 그중 세상에 첫발을 내딛든 신세대들은 일단 먹고 사는 가장 일차적인 문제에서부터 너무 힘들다. 그러니 다른 문제가 연이어 발생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소진된 세상에서 각자 무엇을 할지 어떤 삶을 살지 숙고해야 하며 결국 자기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바꾸려고 몸부림치는 것보다 오늘 하루 흔들림 없이 살아가기 위한 정신무장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자유기고-양지원